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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야구

최희섭, 그리고 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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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통해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타자로써는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되었던 최희섭이 2007년 5월 14일, 고향팀 KIA에 입단하며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영욕이 교차했던 8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 프로야구에 왔습니다.

15억이라는 거액을 들여서까지 데려올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LA다저스에서 웨이버 공시된 이후 포터킷 레드삭스(AAA)에서 그냥 썩고 있었고, 2006년 시즌 종료 후 포터킷 레드삭스에서도 방출되어 템파베이 데빌레이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는 수모를 겪었지만, MLB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꼴찌를 도맡아하는 템파베이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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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의 1루수란 일반적으로 거포가 맡는 편입니다. 수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그만큼 공격력을 기대하는 것인데(2007 시즌 NYY의 덕 민케이비치 등의 유형은 예외), 최희섭은 구단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캐리어 하이 시즌인 2005년, LA 다저스에서 최희섭은 133게임에 출전하여 타율 .253, 출루율 .336, 장타율 .453 등 거포 1루수의 역할을 잘 해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부상이나, 당시 감독이었던 짐 트레이시(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감독)의 플래툰 전략에 의해 좌투수 등판시 출장이 어려웠다는 변수가 있긴 했습니다만, 어느나라 리그나 좌투수보다는 우투수가 많은 법이고, 누구나 부상을 당할 수 있는 법입니다. 조금이나마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자는 MLB 로스터에 남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마이너로 가거나 방출당하는 것이죠. 그것이 야구라는 비지니스 아니겠습니까.

여튼, 금액이 다소 과한 감이 있지만, 거포 부족에 시달리는 KIA에게는 천군만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응 후 감히 지나치기 어려운 중장거리 포를 영입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타 구단에 비해 중심 타선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또 대표적인 교타자인 장성호를 거를 수 없는 하나의 요소로써도 최희섭은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KIA나, KIA의 팬들이 그저 장성호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로써의 최희섭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렇게도 남아있고 싶어했던 메이저리그에서 과감히 KBO로 돌아온다는 어려운 결정을 한 만큼, 그 결정이 후회로 남지 않도록 마음껏 활약하고, 언젠가, 어쩌면 타이거스의 10번째 우승을 위해 힘을 보태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래 영상들 같은 활약을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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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3일, 미네소타 트윈스 : LA 다저스, 브래드 레드키를 상대로 홈런 3개.




2005년 6월 22일, LA 다저스 : 뉴욕 메츠, 호수비 3개, 2루타 2개, 1타점.